유학의 한국도입
유학이 언제 한국에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고 유학은 한국 고유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효자로 만인의 귀감이 되고, 또 유가의 도통설에서 요왕과 함께 등장하는 순왕이 동이족이라는 점입니다. 맹자에 따르면 순왕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로 이사를 가서 살다가 내일 아침에 세상을 떠난 동이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갑골문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맹자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맹자는 물론 공자도 순왕의 선량한 성격과 효행, 그리고 덕치를 높이 평가하였고 특히 공자는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동이족은 중국인이 중국 동쪽에 사는 한국민족을 가리키는 변칭입니다.
또 하나는 기자 동래설입니다. 조선조 말까지 한국의 유학자들은 기자들이 은나라가 멸망하자 동쪽의 한국에 와서 정전제나 팔조의 법을 시행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조선경국전>, <국호조>, <상서 대전>, <사기> 등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기』 등에 따르면 기자는 주무왕에게 홍범구주를 가르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공자보다 약 500년 전에 이미 유가가 목표로 하는 왕도정치의 모델을 제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장지연은 한국이 유교의 종주국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기면동래설이 『사기』 등의 기록처럼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문화적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기면이 정말 동쪽 우리나라에 왔는지에 대한 우리 측의 확실한 역사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는 점이 난점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명나라가 조선의 국호를 부여하여 조선을 제후국으로 묶으려는 의도로 주봉설에 기초한 기면 동래설을 제기했다는 점을 모화 주의자들이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그것을 사실인 것처럼 믿으려 한 점도 또 하나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두 견해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공자보다 500년 이상 전부터 1700년 이상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유학의 창시자를 공자로 인정하는 한 우리나라가 유학의 본원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학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자의 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김충렬은 기원전 4세기경 국경을 접하고 한국과 자주 접촉했던 연나라에서 유학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역사적 확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자가 사망한 지 불과 1세기 정도 지나서 공자의 유학이 아직 성립 단계인 상태에서 전혀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병도는 유학이 한국에 도입된 것은 진역을 피해 진한으로 들어오면서 유교의 예속이 한국에 전해졌고 특히 한나라 무제가 한국에 사군을 설치하면서 한나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한나라 문물이 들어오고 유학도 함께 들어왔다고 합니다.
문화는 물이 흐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연례이며, 따라서 중국인들의 잦은 왕래를 통해 그들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으로 유학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의 한국 문화가 중국보다 낮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사군의 설치로 자연스레 유학이 들어왔다는 견해에는 일리가 있지만 이상과 같은 전제조건이 따른다는 점에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한무제가 유학을 장려하고 이를 국교화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무제가 점령자의 입장에서 유학을 의도적으로 장려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더 옳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한무제는 서역을 정벌하고 한사군을 설치하는 등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한 지도자로서 다양한 이질 민족이나 집단 내지 문화를 동질화하기 위한 통치이념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는 그것을 유학에서 발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점에서 유학의 한국 도입은 한무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전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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