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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의 역사15

조선조 관학파의 기틀 마련, 보수적 정치 성향 조선조 관학파의 기틀 마련 권근(1352~1409)은 공민왕 원년에 태어나 조선 태종 9년에 세상을 떠난 두 왕조의 공신입니다. 그는 명문 안동권씨의 후예로, 그의 고조부는 찬성사를 지낸 권만영이고, 증조부는 원래 성리학을 도입 보급한 학자 중 한 명인 정승을 지낸 권만영이고, 할아버지는 첫 찬성을 지낸 권만영이고, 아버지는 검교정승을 지낸 권만영입니다. 특히 그의 증조부모에게는 5남 4서가 모두 봉군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좌정승 한종유의 딸이었으니 친정 외가가 당대의 명문인 셈이죠. 그의 처가 역시 첫째 아내와 둘째 아내 모두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특히 둘째 아내는 신돈의 횡포에 맞서 그를 탄핵한 이존오의 딸입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은 그가 학문적으로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자랑과 자질을 제공하.. 2022. 8. 27.
외교와 국방관, 인재양성과 학술진흥 외교와 국방관 권근의 정상적인 외교는 선정을 펴고 자치를 강화하고 백성을 화목시키고 국방을 공고히 한 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6)오늘날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는 일반론이 권 인근에서도 희미하게 느낀다. 이런 생각은 정도전(정·도죠은)처럼 진법을 만들어 전술에 응용하려 했다느니, 양·송 지처럼 비 이상 강화와 국방 강화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제 병혁파라는 제도 개혁을 통하여 군권을 강화하려 한점이나 외적 퇴치에 기여한 자를 모시고 그들의 후손을 중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정종 2년과 태종 1년 관제 개혁을 아래 링·이첩을 주도하고 사병 개혁을 건의한 국가의 국방력을 강화시키고 태종 1년에는 화약을 쓰고 왜구를 물리친 최 시게루 선의.. 2022. 8. 26.
조선 개국과 방벌 선양사상 조선왕조 개국과 방벌선양사상 정도전은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라는 민본사상을 기초로 하여 인정, 즉 애민정치, 위민정치의 필요성을 이끌어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종국적 목표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가 백성을 위한 통치가 되지 못하고 민심이 군주를 떠났을 때에는 그 군주는 이미 통치자로서의 자격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왕의 지위는 존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백성은 지극히 많기 때문에 한번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우려할 일이 생기게 됩니다. 백성은 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해서는 안 되며, 지극히 어리석더라도 지모로 속여서는 안 됩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하지만 백성의 마음을 잃.. 2022. 8. 25.
정도전의 역사적 의의 정도전의 역사적 의의 이상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정도전은 먼저 조선왕조 개국 과정에서 유가 입장에서 이단 특히 불교를 배척함으로써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을 확립하고 유가적 민본사회 건설을 기획하여 조선왕조 500년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그가 불교를 배척한 이유로 불가가 인륜을 무시하고 출가를 권장하고 무부 무군의 입장을 취하여 가정을 버린다는 비인륜적이라는 점과 불가가 무위도식하고 많은 노비와 사원천을 소유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망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불교의 교의 자체가 허무를 숭경하고 황당한 윤회전생 같은 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지만 그의 초기 저술 에서 나타난 도·화에 대한 온건한 것입니다. 이후 그가 죽기 전 2~3개월 전에 쓴 에서 배불에 대한 강도를 높인 것은 앞서 말했듯..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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